

9월의 어느 하루
* 실제 경찰의 업무를 완벽히 숙지하지 못하고 쓴 글입니다. 고증에 충실하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찌는 듯한 폭염이 지나가고 하늘이 청명해지는 9월이었다. 놀랍게도 약 일주일 간 큰 사건이 없어 꽤 여유로운 나날을 보내던 찰나에 돌아온 비번일은 하태성 경위에게 아주 값진 휴일일 수밖에 없었다. 아마 지금 벤치 한 구석에 웅크려 앉아 훌쩍이며 이쪽을 빤히 바라보는 아이만 아니었다면 정말로 훌륭한 휴일이었을 것이다.
“……….”
“……….”
하필 사람의 왕래가 그리 많지 않은 곳에 유치원을 다닐 만한 어린 아이가 혼자 앉아 울면서 멀쩡히 쉬고 있는 경찰을 바라볼 것은 또 무언가. 차마 걸음을 떼지 못하던 그가 결국 먼저 그 앞에 다가갔다.
"…길을 잃은 겁니까?”
“……….”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큰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고인다. 입술을 잔뜩 비죽이는 꼴이 꼭 금방이라도 대성통곡을 할 기세다. 난감해하던 그가 결국 아이의 옆에 앉았다. 아이는 어떻게 소리 내어 울지는 않고 그 품에 기대 훌쩍이기 시작했다. 우선 진정시킨 뒤에나 무얼 물을 수 있을 것 같아 우는 아이의 어깨를 가벼이 토닥였다. 근처에 파출소가 있던가, 생각하던 사이에 훌쩍이는 소리가 작아졌다. 눈물이 그친 건지 풀이 죽은 채 훌쩍이는 아이를 다시 다독이고는 허리를 숙였다.
“이름이 뭐죠?”
“……….”
“…보호자 전화번호는 압니까?”
“……….”
혹시 낯선 사람이 길을 물어보면 대답하지 말라는 소리를 이렇게 지키는 걸까. 약간 아득해지는 기분에 잠시 미간을 짚었다.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있으니 당장 어떻게 해결해줄 방법이 없다. 이정도 나이의 아이가 없어졌다면 분명 보호자가 경찰의 도움을 청했을 테지. 결국 먼저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경찰서에서 기다리면 누군가가 찾으러 오실 거예요.”
겨우 눈물을 그쳤던 아이가 눈을 큼직하게 뜨더니, 다시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무어라 덧붙일 새도 없이 이번에는 소리 내어 울음을 터뜨린다. 아, 정말. 이따금 들려오던 경찰 아저씨가 이놈, 하고 잡으러 온다, 하는 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만 같아 손으로 눈가를 덮었다. 경찰은 무서운 사람이 아니며 지금 본인을 찾고 있을 가족이 도움을 요청했을지도 모른다는 걸 설명해보았자 아이는 전혀 듣지 않았다. 누군지 모를 보호자의 교육법을 잠시 탓하고는 결국 그 옆에 다시 앉았다. 한참을 대성통곡하던 아이는 단단히 토라진 건지 다시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난감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결국 낸 타협안은 함께 보호자를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그제야 아이는 입술을 내민 채 일어나 그의 손을 잡았다. 정말로 난감하다.
◈ ◈ ◈
어디에서 왔는지,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물어도 대답은 없고 무작정 멀리 걷자니 더욱 안 될 것 같아 멈추면 불만스럽다는 눈으로 빤히 쳐다보니 결국 방법은 자신이 아는 길을 뱅뱅 돌며 걷는 것뿐이었다. 아무리 가을이 다가왔다 해도 더위가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었기에 결국 근처를 두어 바퀴 돌다가 멈췄다. 걸음이 멎자마자 다시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는 아이를 보고 몰래 한숨을 삼켰다.
“걷는 게 힘들지는 않나요.”
“……….”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뜨거운 햇살에 아이가 지칠까 염려되었던 그가 결국 가까운 슈퍼마켓으로 아이를 데리고 갔다. 가게를 지키고 있던 중년 여성이 인사를 건네자 아이가 배꼽 위에 손을 올리고 허리를 꾸벅 숙였다. 여성이 활짝 웃으며 몇 마디 말을 걸었지만 눈을 한 번 굴리고는 대답 없이 뒤에 숨어버렸다.
“애기가 수줍음이 많네!”
“…예, 조금 그렇습니다.”
필시 자신을 아이의 아버지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리라. 여기서 자신은 아이의 아버지가 아니며 길을 잃은 아이를 우연히 발견했지만 보호자를 찾을 방법이 없어 무작정 떠돌고 있었다 말하는 것이 더욱 힘들 것 같아 적당히 수긍했다. 자신의 옷자락만 꾹 붙들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아이스크림 냉동고 쪽으로 향했다. 좋아하는 것이 있느냐 물어도 아이는 역시나 대답이 없었고, 결국 아이를 안아들어 안을 보여주었다. 가게 주인의 미소가 짙어지는 것을 느꼈으나 애써 외면하며 아이가 가리키는 것을 집어 들었다.
“아빠 말고 엄마를 닮았구나?”
“……….”
이번에는 자신이 말문이 막혔다. 계산을 마친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아이가 이미 가게 밖으로 나서고 있었기에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급히 인사를 건네며 따라 나갔다. 앞이 다시 막막해진다.
◈ ◈ ◈
반나절 정도를 그렇게 하릴없이 주위를 떠돌고야 말았다. 이제는 정말 슬슬 경찰서로 가보지 않겠냐며 운을 떼어도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아이의 눈치라도 보듯 표정을 가만 살폈다. 길을 잃은 아이라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평온한 표정이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조용히 걷던 아이가 처음으로 먼저 걸음을 멈췄다. 오히려 놀란 건 그였다.
“왜 그래요?”
“……….”
대답은 없지만 어쩐지 부루퉁한 표정이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꽤 오래 걸었지. 문득 생각이 거기에 닿아 주위를 둘러보니 가까운 곳에 벤치가 놓여 있었다. 잠깐 앉을까요, 하는 물음에 아이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를 벤치에 앉혀놓고 바로 근처에 있는 자판기에서 이온음료 하나를 뽑았다. 아이에게 음료수를 쥐어주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경찰에 신고를 하자니 아이가 겁을 먹을 것 같고, 여전히 말은 한 마디도 없고. 그렇게 따르고 있는 자기 자신도 경찰임을 생각하니 이 상황이 조금 우습기까지 했다. 헌데 언제까지 이렇게 돌아다닐 수만도 없고…. …갑자기 팔을 붙드는 손에 놀라 아이를 바라보았다.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품에 숨을 것처럼 파고들고 있었다. 당황해 그제야 주위를 살펴보니 순경 둘이 멀지 않은 곳에서 이쪽을 빤히 쳐다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정말로 경찰 때문에 겁을 먹은 건가. 아이의 어깨를 감싸 품으로 당김과 그와 동시에 순경 둘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저, 실례합니다.”
이쪽 파출소에 얼굴을 비춘 적이 있던가? 제복을 입고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아본 건지 의아해하며 일어나 가볍게 경례했다.
“수고 많으십니다.”
“……….”
순경들의 표정이 더욱 괴상해졌다. 덕분에 자신이 혹시 경례를 잘못한 건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설마 총이라도 들고 나온 건지 고민하게 됐다. 서로를 마주보던 순경 중 한 명이 먼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실례지만 아이와 어떤 관계이십니까?”
…그거였구나.
◈ ◈ ◈
“경위님이셨군요.”
장황한 사정 설명과 함께 신분증을 보여주고 나서야 상황이 마무리되었다. 한 명은 허탈하게 웃으며 보호자에게 연락을 취하러 가고, 남은 한 명이 멋쩍게 웃었다.
“조금 전에 실종 신고가 들어와서 수색 중이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실종 아동 같은데, 납치범이 당당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걸로 생각해서 그만…. 실례했습니다.”
“아닙니다. 진작 신고를 했어야 맞는데. 아이가 경찰 얘기만 나오면 겁을 먹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제야 아이가 경찰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이 다시 떠올라 뒤를 돌았다. 울기 직전이다. 앞에 선 순경이 눈높이를 맞추고 웃으며 말을 걸어도 더욱 창백하게 질릴 뿐이라 결국은 다시 안아들었다. 목에 꼭 달라붙는 아이를 보며 순경이 헛웃음을 지었다. 난감하셨겠습니다, 하는 말에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젊은 부부가 황급히 달려왔다. 아이가 냉큼 내려가더니, 엄마아아, 울음을 터뜨리며 안겨들었다. 목소리도 처음 들었네. 짧은 소동 아닌 소동이 지나고, 사례를 하겠다는 걸 몇 번이나 거절한 뒤에야 아이와 눈을 마주했다.
“…고맙습니다.”
두 손을 배 위에 올리고 꾸벅 인사를 하는 것에 머리를 가만 쓰다듬었다.
“앞으로는 부모님과 너무 멀리 떨어지지 마세요.”
“네에.”
“그리고 경찰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도와달라고 해도 됩니다.”
그 말에 아이가 순경 둘을 흘끗 바라보았고, 두 순경은 어떻게든 온화한 웃음을 지으려 애썼다. 아이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아이의 머리를 다시 한 번 쓰다듬어주었다. 아이가 부부의 손을 꼭 잡고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다가, 순경과 인사를 나누고 뒤로 돌았다. 시간이 너무 지났다. 어머니께서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일 년에 한 번 뿐인 날이라면서 또 저녁상을 차리려 하실 텐데. 그러지 않으셔도 된다 말해도 매번 준비해주시니 자신이 옆에서 거드는 방법밖에 없었다. 익숙한 미역국 냄새가 벌써부터 나는 것 같아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감돌았다. 오늘은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과일이나 좀 사가야겠다.


